목자의 심정


18
Oct 2020

50대 후반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끔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설교하러 강단에 올라가야 하는데 원고도 보이지 않고, 내용도 까마득하게 생각나지 않는 꿈을 꾸면 얼마나 두려운지 모릅니다. 30년넘게 설교를 해왔지만 여전히 두렵고 떨리는 일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두려운 일들이 많지요. 건강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지요.   시편 27편은 사울의 추격을 받았을 때나 압살롬의 반역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두려운 상황에서 고백했던 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두려움에 휩싸여 벌벌 떨고 있어야 할 상황인데, 오히려 다윗은 편안하게 거하며, 머리를 들고 즐거운 찬송을 부르겠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저는 이것이야 말로 믿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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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Oct 2020

세상의 가치관은 약육강식입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무한경쟁의 치열함 속에 우리는 살아왔고, 우리의 자녀들도 살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더 강하고, 더 가지고, 더 위로 올라가야만 한다고 배우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복어라는 물고기는 적들 앞에 볼을 최대한 부풀려 몸집이 커 보이게 한답니다. 고양이들이 털을 세우고 꼬리를 바짝 치켜 드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지요. 괜히 센 척, 아는 척 허세를 부리는 것도 주눅들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지요.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큰 집, 큰 차, 큰 교회를 좋아합니다. 유별나게 명품을 좋아하기도 하구요. 왜일까요? 큰 집에 살면 자신의 왜소함이 가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큰 교회에 다니면 자연히 자신의 신앙도 커질까요? 우리들에게 이런 습성이 많이 남아 있다면 신앙의 본질에 대해 무지하거나, 하나님의 은혜에 눈이 열리지 못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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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Oct 2020

은혜의 의미는 ‘자격없는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은혜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은혜의 근원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도 은혜도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들에게 일방적으로 부어주시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 없다고, 은혜가 메말랐다고 한탄하지만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는 넘쳐나고 있습니다. 태양과 공기, 자연과 생물들 모두가 우리를 위해 베풀어 두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은 분명 은혜의 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고, 받은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전자동 오토메틱처럼 이루어 지는 것을 은혜라고 치부해 버립니다. 이것은 값싼 가짜 은혜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친히 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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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Sep 2020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에는 수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고난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 아무것도 유익을 얻지 못하고 생고생만 하게 되지요.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 더 큰 축복을 경험하지요. 그렇다면 고난이 주는 유익이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힘에 겨운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진 이유를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함이라고 합니다. 고난이 주는 첫 번째 유익은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기 전에는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지요. 자기에게 의지할 만한 것이 남아있으면 말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지요. 그러므로 고난이 유익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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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Aug 2020

약관 25세에 왕이 된 히스기야는 통치기간 내내 대내외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14년째 되던 해에 앗수르의 대대적인 침공은 유다의 절대절명의 위기였지요. 그러나 히스기야의 절박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으로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받게 됩니다. 승리의 기쁨도 잠깐, 바로 그 때 히스기야에게 중한 병이 찾아왔습니다.   사십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불치의 병으로 죽음을 직면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절망하거나 원망할 수 도 있을 법합니다. 왕이었기에 실력 좋은 의사를 찾아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은 히스기야가 여러 번 경험을 통해 축척된 기도의 내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기도에도 훈련이 필요한 이유이지요.   히스기야의 기도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심히 통곡하면서 드린 기도였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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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Aug 2020

사도 바울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고 했습니다. 충성은 영어로 faithfulness인데 ‘신실함’이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Ability 보다 Royalty가 더 중요하지요. 둘 다 갖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입니다. 셉나라는 인물은 히스기야 왕 때에 서기관으로 왕을 오셨던 사람이었는데, 앗수르가 유다를 침공할 당시 적장이었던 랍사게와 담판을 벌일 때 서기관으로 참여했던 사람입니다. (참고 왕하18:18) 그 후에 국고와 왕궁의 모든 것을 맡는 최고의 자리에 까지 올라간 것 같습니다.   왕족이나 귀족 출신이 아닌 평민으로서는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 셉나였지요.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힘있는 자리에 올라가서 충성되게 일해야 하는데, 자기를 위하여 높은 곳에 묘실을 준비하고, 바위를 파내어 처소를 준비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고위공직자들이 그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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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Aug 2020

사람의 인체 기관 중에 가장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곳이 ‘눈’입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정보의 80% 이상을 시각에 의존한다고 하니 눈의 중요성을 알만합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기도 하지요. 눈으로 받아들인 정보는 우리의 마음에 담겨 자기의 정체성과 삶의 가치관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기에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지요.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십니다. 믿음의 대상이지요. 그러나 살다 보면 하나님이 뚜렷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언제일까요? 세상에 믿는 구석이 다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도움만이 절실해 질 때에 보이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이 잘 나가던 시절에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방의 화려함과 우상들이었습니다.그것들이 좋아 보였고 새로웠으며 자극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누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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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Jul 2020

유다의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을 꼽으라면 아하스와 므낫세일 것입니다. 아하스는 친 앗수르 정책을 펼쳐서 다메섹에서 보고 온 앗수르의 제단 양식을 예루살렘 성전에 옮겨온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웃시야가 제거했던 이방 신상들을 다시 세우고,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인신제사까지 행했던 악한 왕이었지요.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연합하여 유다를 침공했을 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 앗수르를 의지했던 왕이었습니다. 이렇게 악을 행하는 아하스였지만 다윗과 맺은 언약으로 인하여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어 하나님의 도움의 징조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거절하고 맙니다. 이것이 인간의 완악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려워 사시나무가 떨듯이 떨고 있으면서도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강대국인 앗수르를 의지하려고 하지, 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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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Jul 2020

이사야 선지자는 영적으로 방황하는 유다를 향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 유다 백성들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었지요.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사 2:7)” 그러나 문제는 풍요로움 속에 우상 숭배가 만연하고, 이방의 풍속들이 유행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별하여 부르신 이스라엘백성들이 이방 나라들과 혼합하여 점을 치고, 우상에게 절하고, 물질과 군사력을 맹신하는 불신앙의 나락으로 떨어지자, 이사야 선지자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왜 여호와께로 나아와야 할까요? 마지막 날의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발 아래 굴복하며, 여호와의 전이 모든 산들 위에 가장 높이 우뚝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방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산으로 모여들어 그 발 아래 무릎을 꿇을 것이고, 하나님은 재판관에 되셔서 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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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Jul 2020

오늘은 성찬식이 있는 날입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청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은 다음 세대를 세워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청년부 예배를 독립적으로 드리게 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젊은 세대에 맞는 예배와 메시지를 통해 믿음의 성장과 비전의 발견이 한결 용이해 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이들을 이해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제정적인 투자도 중요하고 전문 사역자를 청빙해서 교육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어른들이 젊은이들을 인정하고 사랑해 주는 것보다 우선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나그네 인생입니다. 한번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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