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의 심정


17
Jan 2021

사람은 관계중심적인 존재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신 하나님은 돕는 배필로 하와를 창조하시고 둘을 짝지어 주심으로 첫 인간관계가 시작되지요. 하나님도 삼위일체라는 독특한 관계성 가운데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관계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관계가 참 어렵다는 점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실패하고 상처받습니다. 교회도 공동체이다 보니 관계의 어려움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도 유독 인간관계에 대한 것이 많은 이유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원수도 사랑하라’입니다.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하기에 그렇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실천하기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우리도......

Read More


10
Jan 2021

시험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test’와 ‘temptation’이지요. 전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연단이 목적이지만, 후자는 사탄이 주는 것으로 우리로 넘어지게 하려는 것이지요. 첫 사람 아담은 사탄의 유혹에 실패하였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라고 했을 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창3:6) 해서 따먹고 말았지요. 그로 인해 죄와 사망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동일한 시험을 당하셨지요. 어떻게 이겼을까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40일간 금식하시고 심히 주리셨을 때, 사탄은 돌덩이를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신8:3)는 말씀으로 대응하지요.첫 번째 유혹이 실패하자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간 후 천하만국을 보여주면서 자기에게 절하면 다 주겠다고 시험하지요.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신6:13)는 말씀으로 유혹을 뿌리칩니다. 마지막으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Read More


06
Jan 2021

새 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성도들 모두가 복 있는 삶을 사시고, 주는 자의 복(행 20:35)을 많이 누리면 좋겠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감사의 제목을 주신 하나님께서 2021년 올 해도 우리와 동행하시며 일마다 때마다 도우시고 힘주실 줄 믿습니다. 여호와 이레(예비하심)과 여호와 라파(치유하심)의 하나님을 믿고 달려갑시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두려워 말고 전진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결단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소나기처럼 쏟아져도 우리가 썩어져 가는 구습에 젖어 옛 사람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한 방울의 은혜도 받을 수 없지요. 새 옷을 입으려면 헌 옷을 벗어야 하는 것처럼 누더기 같은......

Read More


18
Dec 2020

인류의 역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기원전(BC)과 기원후(AD)로 나뉘게 됩니다. 그 만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의미이겠지요. 사도 바울은 “때가 차매”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든 준비를 끝낸 정확한 시간이 되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원하셨던 타이밍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가장 어둡고 갈급한 상황이었습니다. 메시야에 대한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던 시기였습니다. 정치적인 상황을 놓고 보면 로마라는 초강대국의 등장으로 지중해 연안의 모든 나라들이 로마가 닦아 놓은 도로망으로 연결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은 강력한 군대조직을 지닌 로마를 등장시켜 지중해 연안을......

Read More


16
Dec 2020

히스기야는 왕으로 즉위하던 첫 해 첫째 달부터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남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잘 알았던 것이지요. 하나님의 임재의 중심인 성전 정화를 시작으로 예배를 회복했고, 유월절을 지켜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되게 했지요.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이 … 형통하였더라”(대하31:20-21)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침공합니다. 문맥적으로 잘 맞지 않는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충성된 일을 하고 나면 하나님의 축복이 따라와야 되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앗수르의 침공은 하나님의 축복일까요? 아니면 저주일까요? 당연히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앗수르가 침공하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잘 준비된 후에 침공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Read More


05
Dec 2020

웃시야 왕은 십육 세에 왕이 되어 오십이 년을 다스립니다. 그의 통치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뚜렷이 나뉘어 지는데, 형통했던 통치 초기에 비해 그의 마음이 교만해진 이후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나병에 걸려 고통의 세월을 보내어야 했습니다. 많은 유다의 왕들이 겪었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요.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형통했던 왕이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초심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 어리고 부족할 때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을 가지고 그의 도움을 구하게 되지요. 그러나 힘과 권력을 쥐고 몇 차례의 성공을 경험하면 교만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 같습니다. 교만은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서 올라오는 근원적인 죄인 것이지요. 웃시야 왕도......

Read More


28
Nov 2020

악녀 아달랴 한 사람이 가져온 엄청난 재앙은 다윗의 등불이 꺼져가는 위기로 치닫게 됩니다. 아하시야가 죽자 남아있던 왕의 자손들을 모두 죽이고 스스로 여왕이 되어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쥐게 되지요. 아달랴라는 악녀의 천하가 펼쳐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숨조차 쉬기 어려웠던 시절에 제사장 여호야다는 용기를 냅니다. 이제 막 일곱 살이 된 어린 요아스를 다윗의 전통을 잇는 진짜 왕으로 세우기 위해 목숨을 걸고 여왕과 맛 서려 하는 것이지요.   새로운 시대는 그냥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한 사람의 목숨 건 용기가 시발점이 됩니다. 본문에도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이 일은 무엇보다 목숨을 내 놓을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성공할 가능성보다......

Read More


15
Nov 2020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올 한 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감사할 일도 많습니다. 감사와 관련하여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할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지요. 이런 사람은 참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유형은 감사와 원망을 반복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대부분이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지요. 마지막 세 번째는 감사가 일상화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지요. 이런 분들은 감사가 흘러 넘칩니다. 메마른 감사나 억지로 하는 감사가 아닌, 자연스럽게 흘러 넘치는 감사의 비결이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구주’와 ‘주님’이 되신다는 사실은 놀라운 감사의 제목이 됩니다. 돈이 주인이 되면......

Read More


08
Nov 2020

솔로몬 성전이 그토록 아름답고 영광스러웠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곳에 임재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외형과 금으로 장식한 성물들이 아무리 즐비해도 하나님이 머물지 않으신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칠 일 동안의 성전 낙성식이 끝나고,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기뻐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각자의 장막으로 돌아간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의 영광은 하나님의 눈이 이곳에 머물고, 하나님의 마음이 이곳에 임하셔서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이지요.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Read More


25
Oct 2020

‘앎’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식을 통해 머리로 아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경험을 통해 가슴으로 아는 것이지요. 건강한 신앙이란 말씀의 기초 위에 체험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체험을 통해 아는 것을 의미하지요. 사실 성경에 나오는 ‘앎’은 거의 다 그런 의미입니다. 히브리어로 ‘알다(עדי)‘는 말은 '부부가 서로 친밀히 알다’는 의미를 품고 있지요.   우리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이런 것들을 배우고 외울 수 있지요. 하지만 그것을 삶에서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 때 비로소 그 지식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게 되며, 우리의 신앙이 살아 있는 신앙으로 바뀌게 되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