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와 의인 열명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가까이에서 교제하던 자였습니다.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관계되는 어떤 일을 행하실 때에 아브라함에게 먼저 알리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소돔성은 극도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도시 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었기에, 그 일을 아브라함 에게 알려주신 것이지요. 하나님은 일방통행 식의 믿음을 요구하는 분이 아니십니다.우리와 인격적인 교제를 더욱 기뻐하십니다.

 

중보기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중보할 수는 없죠. 적어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기도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면 기도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비록 타락한 도시지만 롯이 살고 있는 소돔을 심판 하시 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중보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그의 행하심을 아는 사람만이 드릴 수 있는 특별한 기도입니다.

 

아브라함이 드린 중보기도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소돔성은 의인 열명이 없어서 멸망한 것 입니다. 만약 그 성에 의인이 열명만 있었다면 한번 더 기회가 주어졌겠지요. 그러나 불행 하게도 롯의 가족들마저도, 아니 롯 자신도 그곳의 문화와 삶이 방식에 깊숙이 물들어 있었 습니다. 롯의 집에 들어온 낯선 두 사람을 범하려고 할 때에 자기의 두 딸을 대신 내어 주겠 다고 제안하는 롯을 볼 때, 어느 순간 소돔의 거대한 타락 앞에 어쩔 수 없이 동화되고 있는 롯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세상에서 의인으로 살아남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혹시 하나님 께서 이 땅에서 의인을 찾으시면 몇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나는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까요? 많은 사람들이 시대가 악하다고, 교회가 병들었다고 입을 모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 또한 그 시대와 문화의 옷을 입고 의인의 삶을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의인 일까요? 하나님 앞에 의인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날마다 주의 자비와 긍휼을, 그리고 용서의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는 자들이 의인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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