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분들이 염려와 두려움 가운데 생활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청정지역으로 알려진 이곳 뉴질랜드에도 3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도 여러 신종 바이러스가 있었지만 코로나19로 명명된 이번 바이러스는 특히 전염력이 강하기도 하고, 증상이 거의 없는 초기에도 감염이 된다고 하여 더욱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항입니다. 한국에서는 신천지 이단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함으로 인해 여러 종교단체들도 공적인 집회를 취소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일제강점기나 수많은 핍박 속에서도 지켜온 주일 공예배를 더 이상 한 장소에 모여 드릴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지요.

 

예배는 우리의 편리에 따라 드릴 수도 있고, 상황이 어렵다고 드리지 않아도 되는 성격의 것이 아닙 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땅한 의무요 특권입니다. 물론 예배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로마의 핍박이 한창일 때도 성도들은 예배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지하 카타콤에 숨어 들어서도 신앙을 지키며 비밀리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한 장소에서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혹시 발생한다고 해도 공예배를 중단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만일의 경우 각자 가정에 흩어져 예배를 드려도 진실된 마음과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믿음으로 드릴 수 있다면 예배를 중단한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 동안 아무런 어려움 없이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를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격도 감사도 없이 드렸던 우리의 무심함을 반성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말씀의 씨앗이 떨어져도 땅의 상태에 따라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십니다. 새들이 먹어버리거나, 뿌리가 얇아 타죽거나, 세상의 어려움에 가로막혀 결실하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오직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삽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게 되지요. 믿음이 결실하기가 이토록 어렵습니다. 왜일까요? 세상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 순종하고 살기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타협하고 포기하고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지요. 말씀을 붙들기 보단 주위 환경에 지배받게 되지요.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어떻게 좋은 땅이 될까요?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딱딱해진 곳은 갈아 엎어야 합니다. 돌이 많으면 파내어야 하지요. 잡초가 자라고 가시덤불이 생기면 하나하나 제거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하면 점점 굳어집니다. 풋풋했던 첫사랑은 식어버리고 말씀을 판단하고 자기방식 으로 제단해 버립니다. 이런 사람들은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의 열매는 무엇일 까요? 순종의 열매입니다. 내 힘과 노력으로 일구어낸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맺게 하시는 열매인 것이지요.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열매를 맺었지요. 다윗은 부족함이 없는 열매를 맺었구요. 바울은 유럽 복음화의 문을 여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나님만이 맺게 하시는 것, 바로 그것이 열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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