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이 되지 맙시다

예수님 당시 높은 종교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위 종교 기득권자였습니다. 예컨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서기관들이 대표적인 종교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며 놀라운 가르침과 천국복음을 전파하실 때 병고침의 이적도 많이 일어나게 되었지요. 그래서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각지에서 몰려왔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별로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곧 종교 기득권층입니다. 그들에게로 향하던 관심과 종교적 열심이 나사렛에서 온 청년 예수에게로 향하자 시기와 질투를 넘어서 시비를 걸고 대적하려 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행하시는 일에 꼬투리를 잡으면서 시비를 걸고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죄하려 했습니다. 한번은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와 함께 먹고 마시는 일이 있었지요. 이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 힐문합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고 말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 의사가 필요 없듯이 의인들에겐 예수가 필요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죄인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이셨지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구원하기 위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죄인인가요? 의인인가요?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즉 칭의를 받은 우리들이기에 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육신을 입고 죄악 많은 이 땅을 살아가는 날 동안은 우리 모두 죄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인이기도 하지만 죄인입니다. 우리가 형식적인 종교인이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우리 죄를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 고백한 것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죄인이로다”는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바울의 사역 말년에 기록한 디모데에서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한 것 처럼 말입니다.

 

믿음이 성숙해 진다는 것은 자기 죄를 더 많이 보는 것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은 죄를 많이 지어야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더 많이 깨닫는 것을 의미하지요. 하나님의 밝은 빛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허물이 더 크게 보이고, 그럴수록 주님의 십자가가 더 큰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믿음 좋은 성도들이 예배 때마다 눈물 흘리고, 십자가 찬송을 부를 때마다 감격하는 이유는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 예수님의 은혜 때문이지요.

 

혹시 언제부터인지 내 죄가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허물이 보이십니까? 삼가 조심하셔야 합니다. 나에게 예수님은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없어서는 안될 구세주이심을 날마다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래야만 종교인이 아닌 그리스도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2월 3일 주보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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