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세상, 영원한 사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의 눈높이에 있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셨는지요? 저는 낮게 떠 있은 구름을 바라보면서 구름타고 다시 오실 우리 주님을 묵상하기도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작사한 ‘주님고대가’의 한 대목인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머리 들고 멀리 멀리 바라보는 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일제 강점기, 고난 가운데 믿음 지키면서 목메어 불렀던 그 노래가 새삼 그리운 시대입니다. 성탄절기를 보내면서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셔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셨던 주님께서는 재림의 약속 또한 곧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순교하지 않고 가장 오랫동안 생존한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을 삼 년 넘게 따르며 그 분을 듣고 보고 만져본 요한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점점 희미해져 갈 때,요한은 붓을 들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으로, 성도들 가운데 조금씩 스며들어온 세속주의와 그 배후에 있는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경고합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유한한 세상 속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사는 비결인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첫 사람 아담을 유혹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선악과’를 따먹게 한 사탄은 예수님도 시험했습니다. 40일 금식을 마친 예수님에게 먹는 것과 보는 것으로 유혹했지요. 세상도 우리를 유혹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꺼리들로 말입니다. 육신의 정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의미합니다. 식욕, 성욕 등을 말하겠지요. 안목의 정욕은 우리의 눈에 보암직한 것으로 시험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이제는 우리 눈에 보이는 멋진 것, 예쁜 것, 화려한 것 … 이런 것에 대한 욕심이 생겨나지요.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이생의 자랑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 곧 자기가 가진 것을 비교하고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사단의 계략입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카스. 폐북. 인스. 트윗…이런 것이 홍수처럼 범람하는 시대입니다. 내가 가본 곳, 입은 옷, 먹어본 음식 등을 사진과 함께 올려놓고 자기 만족과 자랑으로 위안과 만족을 느끼며 사는 시대가 되었지요. 저는 뉴질랜드를 참 좋아합니다. 서로 비교하지 않고 과시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고, 작고 소소한 일상에서 인생의 가치와 행복을 누리는 이들의 삶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유한한 세상을 살며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적그리스도는 흉측한 괴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욕심과 자기 자랑을 자양분으로 몸집을 키워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탄의 계절에 예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고 작은 일에 행복해 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12월 16일 주보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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