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이번 주간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그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고난주간 입니다.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되돌아 볼 것입니다. 저는 이번 주간에 전교인이 마음을 모아 새벽을 깨우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 함께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term break 기간이어서 자녀들과 함께 기도의 자리에 나오시는 것도 적극 추천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새벽기도를 나가본 경험을 가지게 하는 것은 자녀들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 됩니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고, 조금이라도 힘들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진 않지만 조금 힘든 것을 경험하며 자라는 것이 자녀들에게 더 유익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고뇌의 기도였고, 영혼이 진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십자가를 통해 인류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함이었지요. 예수님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날이 다가오자 우리 주님도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의 짐이 무거우셨을 겁니다. 누구의 강요나, 배신이나 누명에 의한 것이기 이전에 자발적인 순종과 희생으로 그 길을 당당히 걸어가시던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이 맞도록,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처럼 되기까지 기도하고 계십니다. 왜일까요? 왜 이토록 고뇌하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주님의 내면 깊이에 있는 그 마음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육체적인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비록 가장 처참하고 무서운 사형 도구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잔인하고 더 고통스럽게 순교하면서도 당당하고 영광스럽게 그 길을 걸어간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고뇌하셨을까요?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세 번씩이나 부르짖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시어 그 고통이 극에 달하였을 때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라고 부르짖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고통의 절규였지요. 하나님은 삼위일체라는 독특한 존재방식으로 계십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이면서 세 분이신 하나님, 그런데 성부로부터의 분리는 죽음보다 더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연합이 생명이라면, 분리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고뇌하며 기도하셨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닐까요?

 

고난 주간을 시작하는 주일에 우리는 묵상합니다. 하나님과의 연합을 생명처럼 사랑하고, 그 분에게서의 분리를 죽음만큼이나 두려워하는가? 십자가는 분리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다시 연합하게 하는 구원의 길입니다. 성찬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찢으신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며 먹고 마심으로 그 분과 다시 연합하는 예식입니다. 기도는 연합이요 교제이지요. 이번 한 주간 새벽에 힘써 나와 기도를 통해 그 분과 교제하고, 온전히 연합되는 은혜를 함께 누리시길 소원합니다.

 

4월 14일 주보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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