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제자리 찾기

있는 그대로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창조의 질서요 자연의 법칙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다가 낙원에서 추방을 당한 것이지요. 어떤 분이  ‘외설이란 어떤 것이 엉뚱한 자리에 놓여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듯 하다 싶습니다. 밥과 반찬이 놓여야 할 밥상에 큰 술병이 놓여 있으면 외설이지요. 아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이 음란인 것처럼 말입니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수많은 반대와 역경을 이겨내고 52일 만에 재건한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성벽이 재건되었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회복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율법 책을 읽고 해석함으로 저들의 신앙과 영혼의 기쁨을 새롭게 하였 습니다. 조상들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갱신하는 일도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한가지 남아있는 것이 있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이방의 영향력, 즉 죄악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걷어내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 13장은 원래 있어야 할 신앙의 제 자리를 찾는 내용이지요. 개혁이나 부흥은 영어 단어에 ‘re’라는 접두어가 붙습니다. ‘다시’라는 의미이지요.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개혁이요 부흥이 아닐까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고, 다시 믿음으로 돌아가고, 우리 신앙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암몬 족속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대했고, 발람을 통해 저주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분리해 내는 것, 즉 아람사람들이있어야 할 자리는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 없다는 말입니다. 혹시 내 안에, 내 삶의 자리에 있지 말아야 할 것이 없습니까?

 

오늘 본문에 충격적인 사실이 나옵니다. 그토록 방해하고 대적했던 도비야가 제사장 엘리아십의 비호를 받고 성전 안에다 자기 사무실을 차려놓은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외설이며, 타락의 극치이지요.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도비야가 무엇일까? 그것을 용납하고 은근히 즐기고 있는 엘리아십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에겐 무엇입니까? 도비야를 조심하십시오. 그는 여우입니다. 포도원을 허무는 여우, 재건해놓은 성벽 위에 올라가 그것을 무너뜨리는 여우같은 존재가 도비야입니다. 느헤미야는 심히 고민한 후 마치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던 자들의 상을 뒤집어 엎어시고, 채찍을만들어그들을 내쫓으신 것처럼 도비야를 내쫓았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이것이 믿음이고 우리의 생활예배입니다. 성도의 자리를 지키고, 교회가 교회되게 합시다. 우리 안에 도비야를 몰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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