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의 인내와 복된 죽음

인류의 최대 문제는 죽음입니다. “한번 죽은 것은 정하신 것”(히 9:27)으로 모든 인간은 죽음을 전제로 태어나게 됩니다. 잘 사는 것(being well)만큼이나 잘 죽는 것(dying well)이 중요하지요. 과학의 발전은 의료분야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인간의 기대 수명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100세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고유한 영역인‘생명’에 인간의 과학이 도전하고 있지요. 복제인간을 통해 생명연장을 넘어 영원을 넘보는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이렇듯 생명연장을 위해 안간 힘을 쓰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사후 세계를 알지 못하는 불안함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중심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을 때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생을 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세상 사람들의 죽음과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지요. 요한 계시록은 믿음으로 겪는 수많은 환란과 박해를 견디면서 순교의 영광을 사모하던 초대 교회에 주신 메세지입니다.

 

계시록 14:13은 주안에서 죽는 자들을 복되다고 선포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이 땅에서의 모든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는 것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담의 범죄 타락 이후에 노동은 고통이 되었고, 평생토록 얼굴에 땀을 흘려야 하는 운명이 된 것이지요. 살면서 좋은 날도 많지만 슬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이 더 많은 것은 인간의 죄악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죄와 악이 가득한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이 보통의 수고와 인내로는 불가능 하기까지 하지요. 그래서 인생은 ‘고해’(苦海)입니다. 죽음은 이런 수고를 그치고 주님의 품 안에서 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이지요.

 

뿐만 아니라 죽음은 모든 행한 일에 대해 보상받는 것입니다. “이는 행한 일이 따름이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행한 일이 모두 따라 오면 천국 갈 수 있을까요? 죄와 허물, 수치와 숨기고 싶은 모든 일은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에서 흘린 보배 피로 씻어 주셨습니다. 여기에 의미하는 행한 일이란 12절에 소개되는 “성도들의 인내,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요한계시록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난도, 죽음도 견디고 이겨냈던 것이지요. 이런 성도들에게 죽음은 참으로 복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행한 일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고, 그것에 따라 상급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축복입니다.

 

12월 15일 주보내용

share

Recommended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