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기 은혜라도

믿음이 참 중요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불신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무조건 믿기 보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더 지혜로운 처세술이라는 말이지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동정녀 탄생과 육체적 부활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시대입니다. 특별히 성경에 기록된 여러 가지 기적을 믿고, 오늘 우리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믿는 자들은 극히 어리석은 사람으로 치부 되기도 하지요. 과연 믿음은 무엇이며, 믿음이 크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유대교 전통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벌이신 후, 두로와 시돈으로 가서 잠깐 머무는 동안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 옵니다. 이 여인은 사랑하는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려 고통 을 겪던 중에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 같습니다. 이런 대부분의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고쳐주십니다. 그러나 왠 일인지 그 여인을 무시하고, 거절 하고, 멸시 하기까지 하십 니다.  그러나 이 가련한 여인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딸을 사랑 했고, 자기 딸이 귀신들려 흉악한 고통을 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딸을 가진 어미라면 누구라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 여인의 절규에 가까운 부탁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는 예수님의 의도적인 무시를 이해할 수 있는지요? 계속해서 딸을 고쳐달라고 소리지르는 여인에게 매몰차게 거절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발 앞에까지 나아와 엎드려 절하면서 애원 하는 여인을 향하여 모멸감이 느껴질 정도로 멸시하는 예수님의 진짜 의도는 무엇 일까요? 그러나 이런 멸시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옳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 기를 먹습니다.” 자신이 개취급을 받아도 괜찮지만 부스러기 은혜라도 좋으니 제발 제 딸을 고쳐주십 시오.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이 아닐런지요?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인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함이었을 까요? 아니면 제자들에게 진짜 믿음이 무엇인가를 본보기로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을까요? 아니면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인을 사랑하시고, 그 딸을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께서 그냥 쉽게 고쳐주기 보다,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고 연단해서 더욱 큰 믿음을 병 고침 과 함께 덤으로 주시려 하지 않았을까요? 믿음은 그냥 자라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질병을 고치는 것에도 관심이 있으시지 만,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길 더 원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구원 받기를 더 기뻐하시지요. 아마 이런이유에서 무시하고, 거절하고, 모욕까지 주신 것은 아닌가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만만치 않은 시대를 살면서 조금만 무시 받아도 견디지 못하고, 거절당하면 나도 뻥 차버리고, 모욕을 참지 못해서 확 미쳐버리는 우리들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나안 여인을 통해 가르쳐 주신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주님만을 붙들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2월 24일 주보내용

share

Recommended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