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대한 자세

우리는 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홍수가 나면 물 천지가 되지만 정작 마실 물을 구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날 홍수처럼 말씀이 쏟아지지만 생명수 같은 말씀을 듣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요. 왜일까요? 설교자의 문제일까요? 물론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수많은 주석과 설교집,  인터넷을 떠도는 다양한 설교문까지, 예전 선배 목회자들이 설교 한 편을 준비 하기 위해 도움 받을 수 있는 자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자료들이 즐비한 시대 이지요. 말씀을 붙들고 혼자서 고민 하고 씨름하지 않아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료들이 많아진 것이 지요. 가끔 들리는 설교 표절의 문제도 이와 무관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고와 고민과 기도가 고스란히 담긴 설교와 몇 몇 자료를 참고하여 적절히 편집하여 만든 설교는 전혀 다를 수 밖에 없지요. 생명수 같은 말씀은 설교자에게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과연 모두다 설교자의 몫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는 청중의 태도에 따라 그 말씀이 생명을 맺을 수도 있고, 그냥 흘러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들은 말씀에 유념하지 않으면 죽은 물고기처럼 흘러 떠내려가게 되지요(히 2:1). 유념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하면 조금 부족한

말씀이라도 나를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견고하여 반드시 보응된다는 사실입니다(히 2:2). 견고하다는 의미는 ‘효력이 있다, 확고하다’는 것으로 반드시 성취됨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의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루어 질 것을 믿는 것이 말씀을 대하는 좋은 자세이지요. 하나님은 신실 하시고, 성취하실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확증될 수 있도록 자주 들고 묵상 하고 맘 속에 잘 박혀진 못처럼 확증해야 할 것입니다(히 2:3). 확증이란 도장을 ‘꽝’ 찍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영어로 ‘confirmed’인데 흔히들 ‘컨폼’을 받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동일하게 중요합니다. 말씀을 어떤 자세로 듣는가에 따라 그것이 생명수가 될 수도 있고, 홍수 때 흘러가는 흙탕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부산의 어떤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던 중, 참으로 개탄스러운 장면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의 바로 곁에 앉은 젊은 부부가 계속해서 핸드폰으로 카톡을 보내고,  뉴스를 검색하면서 설교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들이 과연 예배를 드린 것일까요? 아무리 좋은 설교가 선포되어도 저들에게 그 말씀이 무슨 효력이 있을까요? 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면서 전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우리 가운데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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