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

오늘은 2000년 전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성자 하나님이 초라하고 비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 말구유에 누인 이유가 무엇 일까요? 예수님의 탄생을 조금이라도 드라마틱하게 연출해서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내기 위함이었을까요? 누가는 그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에 호적하라는 명령을 내려서 요셉도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기 위해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로마 제국의 아구스도 황제와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이 묘하게 대비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본질이며 복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측면을 이미지로 보여줍니다. 세상은 크고 멋지고 힘이 셉니다. 그에 비해 천국은 작고 초라하고 힘이 없어 보입니다. 요즘 묵상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크고 붉은 용’ ‘큰 성 바벨론’ ‘큰 짐승’등 어두움과 악의 세력은 언제나 크고 화려한 이미지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들은 한없이 연약하고 초라하지요. 그러나 그 속에 생명을 품고, 진리를 담고 있기에 무너지지 않고 끝내 승리하게 됩니다. 말구유에 누인 연약한 아기 예수의 모습 속에서 천국과 복음에 담긴 비밀을 읽어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크고 화려한 것은 언제나 세상적이고 사탄적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숫자가 가지는 힘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교회가 힘을 가지고 숫자를 자랑하기 시작하면 대부분 변질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했던 베드로의 외침대신 교황의 권세와 교회의 위용을 자랑했던 중세기 로마교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최근에 광화문에 모인 기독교인들이 숫자를 내세우며 힘을 과시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도 이런 유혹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신 또 다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의 메시야가 되고자 하셨기 때문 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들의 모임에 가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여러가지 장애물이 있어서 현실적으론 불가능하지요. 그러나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오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물론 마음먹는 것이 어렵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낮은 자리에 오셨습니다. 분봉왕 헤롯이 거하는 궁전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물며 로마 황제의 집무실에 그 누구가 접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마구간은 양치기들도, 동방에서 온 박사들도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아무나 와서 아기 예수를 만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누구라도 쉽고 편안하게 만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담긴 또 하나의 메시지가 아닐까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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